“메달보다 ‘이야기’를 팔아라” - 밀라노 동계올림픽이 바꾼 마케팅 공식

우승련 기자

srwoo@fransight.kr | 2026-02-19 00:05:34

글로벌 브랜드는 ‘세리머니’에, 금융권은 ‘성장 서사’에 투자했다
소상공인·프랜차이즈도 배워야 할 ‘실시간 공감형 마케팅’ 전략
AI 생성 이미지

[프랜사이트 = 우승련 기자]

이탈리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에서 열린 2026 동계올림픽이 전 세계 마케팅 교과서를 다시 쓰고 있다. ‘1등이 아니어도 팔린다’는 역설, ‘찰나의 감동이 수십억짜리 광고를 앞선다’는 진실이 경기장 안팎에서 속속 증명됐다. 거대 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상공인과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에게도 이 올림픽 시즌은 값진 마케팅 교훈을 남기고 있다.

'지퍼 하나'가 만든 100만 달러의 기적 - 계획되지 않은 순간이 최고의 광고가 되다

이번 대회 최고의 마케팅 장면은 방송국 스튜디오가 아닌 빙판 위에서 탄생했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서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낸 네덜란드의 유타 레이르담(Jutta Leerdam)이 경기복 지퍼를 내리자 나이키(Nike) 로고가 박힌 스포츠 브라가 드러났다. 그 찰나의 장면은 전 세계 SNS를 뒤덮었고, 광고 전문가들은 이 단 한 번의 세리머니 가치를 약 100만 달러(한화 약 14억 4천만 원)로 추산했다.

전문가들이 주목한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어떤 대본도, 어떤 연출도 없었다. 승리의 기쁨이 그대로 브랜드로 이어졌다. 소비자는 광고가 아닌 '진짜 감동'을 목격했고, 그 기억은 어떤 30초짜리 CF보다 강하게 각인됐다.

소상공인에게 주는 교훈: 완벽하게 꾸민 이벤트보다 손님이 직접 경험한 진짜 순간 하나가 더 강력하다. 가게 문을 열기 전 사장님이 직접 만두를 빚는 사진, 빵집 새벽 4시 불 켜진 창문 - 이것이 여러분의 '지퍼 세리머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네덜란드 생활용품 브랜드 '헤마(HEMA)'는 레이르담이 흘린 눈물에도 화장이 번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포착, "눈물에도 강한 아이라이너"라는 문구로 즉시 홍보에 나섰다. 경기가 끝난 수 시간 만에 올라온 이 리얼타임 마케팅은 수백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준비된 자만이 순간을 잡는다는 교훈이다.

'순위는 잊혀도 이야기는 남는다' - 카스·KB금융이 선택한 '서사 마케팅'의 힘

공식 올림픽 파트너인 오비맥주 카스(Cass)는 이번 대회에서 '메달 집계'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을 과감히 버렸다. 대신 내건 슬로건은 "순위는 잊혀도 이야기는 계속된다"였다. 선수의 고뇌, 새벽 훈련, 패배 후의 눈물과 다짐 -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한 것이다.

KB금융그룹은 한발 더 나아갔다. 피겨 남자 싱글 차준환이 0.98점 차로 4위에 그쳤음에도 '한국 남자 피겨 사상 최고 성적'이라는 의미를 부각하며 그의 예술적 완성도와 꾸준한 도전을 브랜드 이미지와 연결했다. 금메달이 아니어도 '이야기'가 있으면 마케팅은 계속될 수 있다.

소상공인 적용 포인트: "우리 가게는 왜 이 일을 시작했는가?" 창업 이야기, 재료를 직접 농가에서 받아오는 이유, 단골 할머니 손님과의 20년 인연 - 이 이야기들이 여러분의 브랜드 자산이다. SNS 게시물 하나, 유리창 한 켠의 손글씨 문구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

'떡잎부터 키운다' — 금융권의 장기 스폰서십 전략

이번 대회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에서 나왔다. 최가온 선수가 자신의 우상인 미국의 클로이 김을 꺾고 한국 최초의 설상 종목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기적'의 뒤에는 신한금융그룹의 묵묵한 장기 후원이 있었다. 비인기 종목의 무명 유망주를 수년에 걸쳐 지원해 온 결과가 올림픽 금메달과 폭발적인 브랜드 노출로 돌아온 것이다.

KB금융은 김연아 시절부터 이어온 피겨 스케이팅 후원 전통을 차준환, 신지아로 이어갔다. 신한금융은 스노보드·프리스타일 스키 등 비주류 종목에서 '혁신 & 도전'의 이미지를 쌓았고, 하나금융은 루지와 장애인 동계스포츠를 통해 '동행 & 포용'의 브랜드 가치를 확보했다.

AI·숏폼·리얼타임 - 기술이 바꾼 감동의 전달 방식 

경기장의 감동이 식기 전 '1분 영상'으로 전 세계에 퍼진다. 올림픽 방송 서비스(OBS)와 기술 기업들은 이번 대회에서 마케팅의 속도를 혁신했다. 알리바바(Alibaba)의 AI는 선수의 역동적인 세리머니와 찰나의 표정을 360도로 포착해 즉시 SNS 콘텐츠로 가공했다. TCL은 경기 직후 선수가 가족과 영상 통화하는 인간적인 순간을 자사 브랜드와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국내에서는 JTBC 독점 중계 체제에서 네이버 '치지직' 등 스트리밍 플랫폼과 협력해 경기 하이라이트를 '핵심 1분 숏폼'으로 재가공·확산시켰다. 시차(8시간) 속에서도 팬들이 직접 '짤(meme)'을 만들고 공유하는 '팬덤 마케팅'이 더욱 정교해졌다.

소상공인 적용 포인트: 스마트폰 하나면 충분하다. 점심 피크 타임 전 30초 영상, 오늘의 특선 메뉴 사진, 손님의 반응 - 이것이 여러분의 '리얼타임 마케팅'이다. 인스타그램 릴스나 유튜브 쇼츠로 올리는 '오늘의 현장'은 수백만 원짜리 광고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다.

2026 동계올림픽은 단 하나의 메시지를 남겼다. "이제 마케팅은 예산이 아닌 진정성의 싸움이다." 레이르담의 지퍼가 증명하듯, 대기업만이 감동을 만드는 시대는 끝났다.

동네 빵집이 새벽 불을 켜는 이유, 국밥집 할머니가 30년째 같은 레시피를 고집하는 까닭, 체력 소진 속에서도 웃으며 손님을 맞는 사장님의 모습 - 이 모든 것이 '이야기'이고, 브랜드 자산이다.

올림픽 선수들처럼 여러분도 경쟁하고 있다. 다만 링은 경기장이 아닌 골목과 상권이고, 메달 대신 단골 손님의 마음을 얻는 싸움이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무기는 광고비가 아닌, 지금 이 순간 여러분만이 가진 진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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