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①공짜 지하철의 역설: 7228억 적자가 만드는 1조8천억 비용 절감 효과
특별취재팀
yheo@fransight.kr | 2025-10-15 06:58:27
교통공사 적자 뒤에 숨은 건강보험 재정 절감의 비밀
[프랜사이트 = 특별취재팀 박세현·허양 기자]
서울교통공사를 비롯한 전국 6개 도시철도 운영기관이 매년 7228억 원의 무임수송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 중 85%가 65세 이상 노인 무임승차로 인한 것이다. 서울교통공사만 해도 연간 3500억 원 이상이 '증발'한다.
"노인 공짜 지하철이 적자의 주범"이라는 프레임은 이제 사회적 통념이 됐다. 하지만 손익계산서 너머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진다. 최근 연구들은 이 제도가 단순한 '교통 복지'가 아니라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지키는 '건강 투자'로 기능하고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48조 원의 시한폭탄, 노인 의료비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2023년 65세 이상 고령층의 진료비는 48조9011억 원. 전체 진료비 110조 8029억 원의 44.1%를 차지한다. 2000년 1조5821억 원에서 23년 만에 약 30배 증가한 수치다. 65세 이상 인구는 2023년 기준 922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7.9%에 달한다. 이미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둔 대한민국. 노인 1인당 연간 의료비는 543만 원으로 전체 국민 평균의 2.5배다.
이 추세라면 건강보험 재정은 2030년대 초반 완전 적자로 전환될 전망이다. 그런데 여기, 의료비 폭증의 배경에 숨어 있는 변수가 하나 있다. 바로 '활동량 격차'다.
무료가 만든 기적: 하루 3000보의 차이
"버스는 편하지만 유료, 지하철은 불편하지만 무료."
많은 고령자들은 조금 더 걸어도, 환승을 해도 지하철을 선택한다. 서울연구원의 2024년 이동행태 조사 결과는 이 선택이 만든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65세 이상 무임 이용자는 하루 평균 3000보를 더 걷는다.
이 활동량 증가는 단순한 운동 이상의 효과를 낸다. 고혈압, 당뇨, 무릎관절증, 우울증 등 고령층 주요 만성질환의 발병률을 10~20%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의 건강 개선은 곧 국민건강보험 지출 감소로 직결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이 '활동성 증가' 효과를 반영할 경우 연간 약 1조8000억 원의 의료비 절감 잠재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교통공사의 무임승차 손실액 3500억 원의 약 5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우울증 감소, 사회적 고립 방지 등 정신건강 측면의 긍정적 효과는 포함되지도 않았다고 지적한다.
부처 간 회계의 함정 “교통복지”에서 “건강복지”로
결론은 명확하다. 경로 우대 지하철은 교통공사의 적자를 늘리지만, 국가 전체의 의료비 적자를 줄인다. 한마디로 무임승차 제도는 '재정 손실'이 아니다. 부처 간 회계구조의 왜곡으로 인해 보건재정 절감 효과가 가려져 있을 뿐이다. 교통 예산에서는 적자로, 건강보험 예산에서는 흑자로 작동하는 이 제도를 단순히 '교통 복지'의 틀로만 바라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현재 지하철 무임승차는 「노인복지법 시행령」에 따라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 법령은 '교통정책'의 영역에서만 해석되고, 보건의료 재정이나 건강보험 제도와는 분리돼 있다. 서울연구원 교통복지센터의 최은지 박사는 "지하철 무임은 교통 문제가 아니라 건강 문제"라며 "노인이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가장 값싼 건강보험 정책"이라고 강조한다.
세계 유례없는 '전면 보편 무임', 그 가치는?
해외 주요국은 대부분 조건부 무임 제도를 운영한다. 영국은 연금 수급 연령(66세) 이상만 무임이며 평일 출퇴근 시간에는 제한된다. 일본은 70세 이상에게 연간 1000~2만510엔의 유료 '실버패스'를 판매한다. 프랑스는 저소득층만 무료다. 반면 한국은 65세 이상 전원에게 24시간 무료 이용을 제공한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전면 보편 무임' 제도다.
그럼에도 사회적 편익 분석 결과, 이 제도의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은 1.31~1.84로 “100원을 쓰면 사회 전체에 131~184원의 가치가 돌아온다”는 의미다. 이는 이 제도가 단순 복지가 아니라 '투자형 복지'임을 입증한다.
폐지가 아닌 재정의가 답이다
무임승차는 재정의 적자가 아니라 건강한 노년을 유지시키는 사회적 보험료다. 노인들이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걷는 몇 백 미터의 길은, 결국 건강보험 재정의 부담을 덜어주는 수천억 원의 가치로 환류된다.
정책의 초점은 '폐지'가 아니라 '현대화와 재정의'로 옮겨져야 한다. 보건복지부와 국토교통부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통합 교통·건강 재정 모델'이 필요하다. 지하철공사의 적자 중 일정 비율을 건강보험 재정에서 보전하는 '공공보건활동 인센티브(PHI, Public Health Investment)' 제도를 검토할 때다.
정부는 교통공사의 적자 보전을 단순 보조금이 아니라 국민건강보험 지출 절감의 환류 메커니즘으로 통합 관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이다.
적자의 역설은 계속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 역설 너머의 진실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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