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특집] 예수 탄생의 역사적 배경과 신학적 의미를 되짚다
우승련 기자
srwoo@fransight.kr | 2025-12-23 10:06:00
로마 제국 변방의 탄생 서사가 던지는 현대적 질문
[프랜사이트 = 우승련 기자]
매년 12월이 되면 전 세계는 성탄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 오래된 축제가 단순한 종교 의례를 넘어 현대 사회에 어떤 의미를 던지는지 성찰하는 이는 드물다. 예수 탄생의 역사적 배경과 그것이 담고 있는 신학적 메시지를 다시 살펴본다.
변방에서 시작된 이야기
성경 누가복음은 예수 탄생을 "가이사 아우구스투스의 칙령으로 온 세계가 호적 등록"을 하던 때로 기록한다. 로마 제국의 식민 지배 한복판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는 서술이다. 마태복음은 이를 "헤롯 왕 때"로 제시한다. 헤롯 대왕은 기원전 37년부터 기원전 4년까지 유대를 통치한 로마 임명 왕이었다.
흥미롭게도 두 복음서의 연대는 일치하지 않는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종교학 교수 바트 어만은 누가복음의 호적이 실제로는 서기 6~7년경 구레뇨 총독 시절의 사건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마태복음의 헤롯 시대와 10년 이상 차이가 난다. 학계는 이를 복음서 저자들이 메시아 정체성과 다윗의 성읍 베들레헴을 강조하려는 신학적 의도로 이해한다.
가톨릭 성서학자 레이먼드 브라운 신부는 저서 '메시아의 탄생'에서 이 문제를 깊이 다뤘다. 두 교황으로부터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된 그는 탄생 서사가 역사적 사실보다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신학적 이해를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베들레헴 출생은 미가서의 메시아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한 신학적 구성이라는 것이다.
성육신의 신학
요한복음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역사 속으로 들어왔다는 이 고백은 성탄을 단순한 탄생 축하가 아닌 신과 인간의 만남이라는 신학적 사건으로 위치시킨다.
초기 교회는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공존하는지 치열하게 논쟁했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는 그리스도를 "한 인격 안의 두 본성"으로 고백하는 장통 교리를 확립했다. 이는 성탄이 인간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는 철학적·신학적 토대가 됨을 뜻한다.
현대 사회를 향한 질문
가톨릭 사목헌장은 "성육신한 말씀의 신비 안에서 인간의 신비가 빛을 얻는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고백은 인간을 효율의 단위가 아닌 존엄한 존재로 규정한다. 성과주의와 혐오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성탄은 인간 존엄의 재기초를 요청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최근 성탄 메시지에서 성육신을 "상처와 이주 속에서도 태어나는 희망"으로 해석하며 연대와 평화의 과제를 제시했다. 전쟁과 난민의 시대에 성탄은 개인적 위로를 넘어 분열과 폭력의 구조를 멈추고 평화를 만들 공적 책임을 묻는다.
복음서는 또 하나의 긴장을 담고 있다. 권력에 집착한 헤롯과 무력한 아기 예수의 대비다. 요크대 토니 버크 교수는 성탄 장면이 "역사적이라기보다는 도상학적"이며 "신학적 진리를 묘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성탄의 역전 서사는 이 모든 것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구원과 새 질서는 위에서 내려오는 통제가 아니라, 낮은 자리의 생명을 지키는 방식으로 시작된다는 윤리적 전복이다.
역사일까? 신앙일까?
학자들 사이에서도 견해는 갈린다. 에즈버리 신학교의 벤 위더링턴 3세 교수는 "성서 자료도 다른 고대 역사 기록처럼 같은 방식으로 검증해야 한다"며 예수 탄생 이야기의 역사성을 지지한다.
하지만 대다수 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 탄생 이야기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구세주로 믿으며 만들어낸 신앙의 서사라는 것이다.
예수 탄생 이야기는 여러 층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역사적으로는 당시 로마와 유대의 정치·사회 상황 속에서,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핵심 고백으로, 그리고 오늘날에는 인간의 존엄성, 평화와 연대, 권력에 대한 비판이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2000년 전 베들레헴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누구를 배제하고 있는가. 어떤 생명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가. 성탄은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며,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우리의 선택을 요구하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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