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맹사업법 개정안, '선의의 규제'가 불러올 산업 붕괴 시나리오

박세현 기자

shpark@fransight.kr | 2025-12-10 11:07:04

민주당 발의안, 가맹본부에 '무한책임' 떠넘겨… 프랜차이즈 생태계 전체 위협
나경원 필리버스터로 재점화된 논란… "보호 아닌 파괴" 업계 경고음
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가맹사업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프랜사이트 = 박세현 기자] 

민주당이 발의한 가맹사업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국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가맹점주 보호라는 명분 아래 추진되는 이번 개정안이 실상은 프랜차이즈 산업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독약'이라는 비판이 업계와 전문가 사이에서 거세게 일고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본회의에서 장시간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며 개정안의 위험성을 조목조목 지적한 가운데, 과연 이 법안이 '상생'인지 '공멸'인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현실 무시한 '매출 보전 의무', 누가 경기 침체 책임지나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목되는 것은 가맹점 매출 하락 시 본부에 일정 수준의 보전 책임을 지우는 조항이다. 얼핏 들으면 가맹점주를 위한 안전장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매출 감소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경기 침체, 상권 쇠퇴, 소비 트렌드 변화, 인근 경쟁업체 증가 등 가맹본부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가 훨씬 많다. 그럼에도 이 모든 위험을 본부가 떠안으라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한 프랜차이즈 본부 대표는 "코로나19 같은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도 본부가 매출 보전 책임을 져야 한다면, 어떤 기업이 감히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겠느냐"며 "이는 창업 생태계 자체를 얼어붙게 만드는 조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 큰 문제는 법적 분쟁의 폭발적 증가 가능성이다. 매출 하락의 원인을 두고 본부와 가맹점주 간 책임 공방이 일상화되면, 법정 다툼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이 양측 모두를 지치게 만들 것이다. 결국 '보호'를 위한 법이 '소송 양산법'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중소 브랜드 퇴출, 대기업 독식 구조 심화

개정안의 또 다른 맹점은 중소 가맹본부에 대한 고려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정보공개서 작성 의무 강화, 법적 책임 확대, 매출 보전 의무 등은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 브랜드에게는 사실상 '퇴출 통보'나 다름없다.

프랜차이즈 산업의 강점은 다양성이다. 소규모 지역 브랜드부터 대형 체인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기에 창업자들이 자신의 여건에 맞는 브랜드를 고를 수 있다. 하지만 과도한 규제로 중소 브랜드가 시장에서 사라지면, 결국 대기업 중심의 독과점 구조만 강화된다.

프랜차이즈 전문가들은 "현재 개정안은 중소 브랜드의 시장 진입 장벽을 높여 프랜차이즈 시장의 다양성을 해친다"며 "역설적이게도 가맹점주의 선택권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혁신 투자 막는 '위험 회피' 경영 확산

규제가 강화되면 기업은 본능적으로 방어적 자세를 취한다. 새로운 메뉴 개발, 물류 시스템 혁신, 디지털 전환 투자 등은 뒷전으로 밀리고,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만 집중하게 된다. 실제로 2019년 프랜차이즈 상생협약 의무화 논의 당시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본부들이 비용 부담 증가를 우려해 신규 출점을 대폭 줄이면서 오히려 가맹점주들의 창업 기회가 축소됐다.

업계 관계자는 "본부가 위축되면 결국 가맹점도 함께 침체된다"며 "프랜차이즈는 본부와 가맹점이 동반 성장하는 구조인데, 한쪽을 과도하게 규제하면 생태계 전체가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해외 사례가 증명하는 '과잉 규제의 역습'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유사한 규제를 도입한 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경험했다. 매출 보전 규제와 본부 책임 강화 조항이 오히려 브랜드 성장을 정체시키고 투자를 감소시켰으며, 결과적으로 가맹점 폐점이 증가하는 역효과가 나타났다.

규제의 의도가 아무리 선하더라도, 시장 구조와 산업 특성을 무시하면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교훈이다. 국내 프랜차이즈 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나경원 필리버스터, "구조 봐야지 감정으로 입법하나"

나경원 의원은 본회의 연단에서 개정안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가맹점 보호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모든 위험을 본부에 떠넘기면 프랜차이즈 생태계 전체가 무너진다"는 것이 그의 핵심 논지였다.

특히 그는 "정책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봐야 한다"며 경기 변동 리스크의 본부 전가, 중소 브랜드의 시장 퇴출 위험, 과도한 책임 추궁으로 인한 창업 위축 등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프랜차이즈 산업은 협력 기반 산업"이라는 그의 마무리 발언은 이번 개정안이 놓치고 있는 본질을 정확히 짚어냈다. 한쪽을 일방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양측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정책의 역할이다.

필요한 것은 '규제'가 아닌 '협력 시스템'

전문가들은 개정안이 추구하는 목표 자체는 타당하지만, 접근 방식이 잘못됐다고 입을 모은다. 가맹본부를 잠재적 가해자로 전제하고 처벌 위주의 규제를 강화하는 것보다, 실질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지적이다.

구체적으로는 ▲매출 예측 정보의 정확성 제고 시스템 ▲광고비 집행 투명화를 위한 디지털 플랫폼 구축 ▲분쟁 예방을 위한 표준계약서 정교화 ▲본부와 가맹점 간 정기 협의체 의무화 등 현실적인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포퓰리즘 입법이 산업 죽인다

민주당의 가맹사업법 개정안은 가맹점주 보호라는 정치적으로 매력적인 구호 뒤에 산업 현실을 외면한 졸속 입법의 전형을 보여준다. 선의로 포장된 이 법안이 통과되는 순간, 프랜차이즈 산업은 브랜드 확장 위축, 중소 본부 퇴출, 창업 시장 냉각이라는 3중고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가맹점주를 보호하고 싶다면, 본부를 옥죄는 규제가 아니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국회는 당장의 표심이 아니라 산업의 미래를 생각하는 책임 있는 입법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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